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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블로그 101 번째 블로그
2007/12/28 07:23

짜자잔~ 세상바라기에서 발행하는 새로운 컨셉의 영화리뷰를 소개합니다.

[영화vs영화]는 비슷한 주제, 혹은 상반된 주제의 두 영화를 비교분석하여 나름대로의 결론을 끌어내고자 신설한 카테고리랍니다!! ... 라는 건 전부 뻥이구요ㅜ 사실은 철학수업의 마지막 과제로 낸 영화에세이에요ㅜ흑.
저는 영화를 무지무지 좋아한답니다.(사실이에요)



I. 영화를 포괄적으로 평가한다면?

나는 사춘기를 이제야 갓 지난 나이든 십대다. 막연히 ‘대학에 가면 나아질거야.’라는 생각으로 고3 일년을 보냈고, 이제 그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밤, 혼자서 궁상맞게 창밖을 내다보며 괜한 한숨을 쉬곤 했다. 세상에서 나만 외롭다는 착각 속에서 살았던 일 년이다.

<Paris, Texas>, 답답한 화법
영화를 좋아해서 짧은 인생이었지만 지금까지 본 영화를 세기에는 벅차다. 하지만 아직 어린 이십대라 그런지 옛 영화는 즐겨보지 않는다. 희대의 걸작이라 두고두고 일컬어지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도>도 보지 않았으니, 말다했다. 즉, <Paris, Texas>는 내가 뗀 첫 Old movie이다.

역시나 영화의 화법은 익숙하지 않았다. 움직임없이 인물을 부각시키는 카메라의 답답함에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다. 말없이 떠나간 아내를 찾아 남편이 길을 떠난다, 는 익숙한 스토리. 솔직히 말하면 뒤에 주인공과 아내가 유리벽 사이를 두고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외에는 전혀 인상에 남지 않았다. 처음에는 3인칭으로 시작하던 주인공의 이야기가 종반부에 가서는 ‘나’로 바뀌고, 남성의 성욕을 위해 일하는 스크린걸이 나중에 사랑스런 아내로 바뀌는 모습을 보면서 화면을 눈물로 채우지 않아도 가슴 저릿한 재회 장면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을 뿐이다.

<Lost In Translation>, 사랑스런 여인의 눈동자
반면 <Lost in Translation>은 꽤 마음에 든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파란 털실 목도리가 잘 어울릴 것만 같은 여자, 샬롯이 등장한다. 그녀는 나에게 ‘큰 창문은 소통이 아닌, 지상으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고, 이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 하겠다.



II. 주인공의 외로움을 상징하는 것들

<Paris, Texas>는 로드 무비라고 분류하는 사람들이 있는만큼, 길이 눈에 띤다.
주인공이 하염없이 걷는 그 황량한 사막도, 사람이 걷고 있으니 길이고, 아내를 뒤쫓아 차를 달리는 길, 아버지와 아들이 워키토키로 대화를 나누는 아스팔트 도로도 길이다. 영화 초기, 온통 갈색으로 칠한 모랫길은 Texas로 들어가면서 일변 도심 속의 길이 된다. 사막과 함께 입을 다물었던 주인공이 아들과 함께 하면서 웃음을 되찾는 과정이 상징적으로 나타난 것이라 믿는다. 즉, <Paris, Texas>에선 길이 주인공의 외로움을 나타내는 매개체라 생각한다.

<Lost In Translation>은 네온사인이 주는 자극으로 주인공의 마음이 짐작된다.
수많은 작가와 연출가들이 군중 속의 개인을 묘사했지만, 외국에 툭하니 떨어진 개인만큼 두려움에 떨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긴, 샬롯과 해밀튼은 전화를 해도 관심 받지 못하거나(샬롯), 사랑스런 대화가 오가지만 정작 속내를 털어놓지 못하고 공허한 그리움만 묻어나는 사람(해밀튼)이니, 이러한 외로움이 있었을거다.

이 두 사람의 시각에서 비춘 도시의 네온사인이기 때문에 의미 없고 가치 없음의 인상을 줄 수 있었으리라.

<Lost In Translation>에서...
샬롯은 남편이 일 때문에 떠나간 뒤 호텔의 창가에 쪼그리고 앉아 물끄러미 밖을 내다보는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큰 창이 바깥과의 소통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단절되어 살아가는 사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Paris, Texas>에선...
어린아이 헌터가 트래비스의 메시지를 듣는 장소가 큰 창이다. 여기서는 소통과 단절을 나타내기 보다는 피상적인 외로움만을 드러낸다고 여겨지는데,
첫째로 어린아이가 화면을 주도하는 화자라는 점이 그렇고,
둘째로 아버지임에도 마주보고 대화하지 못하는 상황이 그렇다.



III. 각 영화에 대한 철학적 분석

■ Paris, Texas(1984), Directed by Wim Wenders

상실의 감정을 드러내는 장치
주인공이 인가에 도착한 뒤, 비틀고, 또 비틀어도 물이 나오지 않는 수도꼭지를 지나 가게에 들어가 냉장고를 연다. 그 안에 들어찬 술은 아랑곳하지 않고 얼음을 씹어 먹는데, 차가움과 함께 갈증을 동시에 풀기 위함이 아닐까. 또한 얼음을 씹어 먹던 남자가 쓰러진 뒤 가건물 같은 조악한 병원으로 실려 간다. 남자는 깨어났음에도 침묵을 지키는데 후에 드러날 ‘화염으로 뒤덮인’ 그 날 밤 때문이 아닐까한다. 하룻밤에 아내와 자식이 사라지고,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정신없이 5일 동안 걷기만한 남자는 말을 잃었을 것이다. 상실을 나타내는 대표주자, 언어의 상실을 잘 버무려 만든 장치가 아닐까.

등장인물 간의 대화로 드러내는 무언가
이 영화는 남편과 아내가 유리벽 너머로 마이크와 수화기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 외에는 그렇다할 느낌이 없었다. 워키토키를 통한 대화는 소통의 단절이라기 보단 아이의 설렘을 나타내는 장치라고 여겨졌다. 또한 녹음기를 통해 아빠의 얘기를 듣는 장면은 아버지를 찾았음에도 고독을 맛보는 아이를 나타냈다. 반면에 peep show 업소에서의 대화는 떳떳하게 나서지 못하고 익명으로나마 소통할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의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줄만하다.

■ Lost In Translation(2003), Directed by Sofia Coppola

영화 제목에 대한 이해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이름으로 개봉되었던 <Lost In Translation>을 내 식으로 번역한다면 <들리지 않는 귀, 떼이지 않는 입술>정도가 되겠다.

해밀튼이 자신이 나온 영화가 이상하게 더빙되어 상영되고 있는 것을 볼 때, 자전거 운동 기계에서 나오는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해 사고가 날 뻔한 경우, 사진을 찍을 때 사진작가의 요구가 어설픈 통역가에 의해 모두 묵살될 때가 바로 Loast In Translation이라는 영화 제목과 걸맞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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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Icon Zet | 2007/12/28 09:45 | PERMALINK | EDIT/DEL | REPLY
리뷰 짱입니다. 금요일 황금 금용일 되시길!
BlogIcon 탓치 | 2007/12/28 10:00 | PERMALINK | EDIT/DEL
감사합니다:) 2007 마지막 금요일 잘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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