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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블로그 101 번째 블로그
2009/03/07 11:07

가끔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귀에 꽂은 mp3로 Knocking on heaven's door를 들으며 내가 <Knocking on heaven's door(1997)>의 마틴이나 루딘이 된 듯 한량없이 돌아다닐 때가 있다. 그럴 때 하늘을 보면 꼭 내가 극복하지 못할 벽을 마주한 듯한 미묘한 기분이 든다. 영화의 주인공들 앞에는 언제나 그런 고난과 역경이 펼쳐지니까.

하지만 언제나 깨닫지만, 나는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다. 나는 현실세계, 대한민국의 대학생이고, 큰 인생의 굴곡 없이 살아온 21세의 남자다. 곧있으면 군대를 갈 것이고, 적당한 시기에 사랑을 할 것이고, 회사에 가서 돈을 벌고, 가끔 밖에 나가 기타를 치다가, 적당히 나이 먹으면 회사에서 나와 나의 '진짜 꿈'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래, 영화는 영화다.
<영화는 영화다(2008)>을 보았다. '이기는 놈이 주인공이 된다.'라는, 어찌보면 단순이 조폭영화의 배경을 영화 작업 공간으로 옮겨놓은 것같은 홍보문구 아래, 영화는 다른 이야기를 풀어낸다.

첫 시작은 기럭지 자체로도 멋진 소지섭의 다듬어지지 않은 야생적인 모습. 내가 여자라면 '꺅'하고 넘어갔겠지만, 다행이 남자라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큰 키에, 올 블랙의 정장을 차려입고(심지어 셔츠도 검은색이다!) 깎이지 않은 턱수염이 듬성듬성한 얼굴을 한 채 허공을 응시하는 그의 모습은 너무 멋있었다. 어찌하면 그런 눈빛을 할 수 있을까.

소지섭은 연기의 꿈을 접은 깡패, 그에 대응하는 주인공인 강지환은 깡패기가 다분한 연기자다. 둘이 떼어놓고 보면 있을법한 이 두 인물은 서로 만나게 되고, 며칠 지나지 않아 강지환의 영화에 차질이 생긴다. 영화의 시작이다.

영화를 다 보고나면 깨닫겠지만, '이기는 놈이 주인공이 된다.'는 적절치 않다. 그 두 사람이 싸우는 것은 '주인공이 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남자로서의 '오기'에 가깝다. 이 문구는 짧고 강렬해서 홍보에는 적합하지만 외우기 쉬운 이 문구로 인해 사고를 제한당하고, 영화를 이해하는데 방해가 될터였다. 다행히 나는 이 문구를 영화를 본 뒤에야 접했기 때문에 이런 걱정은 덜었다.

영화는 영화라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은 사뭇 다르다. 소지섭은 대본에 나오는 강지환의 대사를 읊으며 한 인물을 놓아주고, 이 인물이 돌아와 발목을 잡는 데서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반대로 강지환은 떠나는 소지섭을 붙잡다가 부하들에게 혼쭐이 나는 데서 이를 알게 된다. 이토록 자명한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 둘은 큰 고통을 겪는다.

'영화는 영화'라는 큰 맥락에서 마지막 싸움은 당연한 결과였다. 강지환이야 전력으로 싸웠을 테지만 (그가 주인공이 때문에!) 소지섭의 입장은 사뭇 다르다. 바닥에 누워 가쁜 숨을 내쉬는 그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돈다. 그는 그 싸움에서 배우였지 깡패가 아니였던게다. 그는 멋지게 '졌다.'

하지만 소지섭은 자신의 현실을 배우로써의 자신과 철저히 분리시켰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행동은 수타(강지환)를 카메라 삼아 담아낸 자신의 현재였다. 배우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담아내고, 배우로써 깡패를 연기했던 그는, 결국 깡패로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가슴이 먹먹했다. 두 남자의 불꽃튀는 싸움에서 피가 끓을 법도 하건만, 씁쓸한 뒷맛이 남아있다. 영화와 현실을 착각했던 일순간의 행동으로 결국 살인을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영화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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